11월의 편지
< 하이퍼서사 작품 >
< 하이퍼서사 작품 >
11월의 편지 _ 후회하던 날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나 뛰쳐나왔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새벽을 새고 달려온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향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음에도 기억의 일부가 사라졌다니.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언뜻 보니 바뀐 곳이 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찬찬히 주변을 훑던 중에 스산한 바람이 불면서 안개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른 아침이라 그렇다고 믿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날씨가 하루 만에 망가져 버려 무언가를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다. 그때 귓가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렸다.

우중충해진 날씨에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금세 비가 올 것 같아 몸을 피할 수 있는 마땅한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도 구석의 좁은 골목에서 자그만 천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 쪼그려 앉아 잠시 쉬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고서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비가 내려주었다.
비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도록 세차게 내렸다. 도시에서는 흔하지 않았기에, 내리는 비를 가만히 그리고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했다. 금방이면 그칠 줄 알았던 확신과는 달리, 점점 더 거세지기만 하여 꼼짝없이 천막 속에 있어야 할 판이었다. 계속되는 비에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바닥에도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천막 위로도 물이 고여 가끔 툭, 툭 쳐주어 물기를 빼주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체념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 오히려 더는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해졌다 해도 무방했다. 희미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면서 다시금 쪼그려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자연스레 저편에서 하나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그 기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잊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란 건 확실했다.
스토리텔러 : 정은승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