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편지
< 하이퍼서사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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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편지 _ 첫 페이지
[ 19년 전 ]

11월의 어느 날, 종이 울리고 우리는 모두 들떠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끼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가방을 싸매고 문밖을 향하던 도중, 벽에 걸린 전신거울 앞에 비추어진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너네는 뭐 입고 올 거야?
애들 엄마, 아빠 다 오시는 거면.. 좀 예쁘게 입으려고
근데 공개수업이라니,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맞아. 그래서 그런지 더 기대돼.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 처음 하는 거잖아
뭐 이제는 1학년 생활도 끝나가긴 하지만. 그냥 빨리 가서 이거나 보여드려야겠다
뒤에서 떠드는 말들이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도대체 뭐가 기대된다는 건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치지도 않은지 계속 들려오는 대화에 힘이 겨워지기 시작했다. 귀에 손을 가져다 대 소리를 막고 싶었지만, 그 행위는 그저 머릿속에서만 실현 가능한 행위란 것을 알았다.
성아야 너는 뭐 입을 거야? 나 진짜 긴장돼서 먼저 옷부터 정해야겠어
아니다, 이거 먼저 물어봐야지
부모님 오셔? 아까 쟤는 부모님이 전화로 미리 못 올 거 같다 말씀하시더라고
그래서 펑펑 울더라, 어휴
"아, 그게 사실.... 나도 부모님 못 오셔. 두 분 다 바쁘셔서."
친구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말을 해 버린 것뿐이었다. 벌써 한여름이 되었는지 싶을 만큼, 교복은 젖은 지 오래였다. 땀의 찝찝함 때문이었을까 도망치듯 교실 밖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손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구겨진 종이가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종이를 손아귀에 넣어 더 세게 구기고 있었을까, 어느새 걸음은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숨을 잠시 내쉬고, 종이를 바닥 위로 버리려는 찰나에 뒤에서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재빨리 가방을 열어 속에 종이를 집어넣었다. 숨을 가다듬고는 뒤를 돌아 할머니를 바라보자, 환하게 웃는 미소가 먼저 눈에 담겼다. 그에 아무 말 않고 미소만 바라보다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스토리텔러 : 정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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