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편지
< 하이퍼서사 작품 >
< 하이퍼서사 작품 >
11월의 편지 _ 악몽

정신이 몽롱했다. 여기가 어딜까, 주변을 둘러보면 가늠하지 못할 공간이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눈을 감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뜨니 이곳에 도착해 있던 것뿐이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색칠되어 있던 공간과는 다르게 이곳은 전부 하얀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마치 오면 안 될 곳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 저만을 어디론가 인도하고자 하는지 중간에는 기다란 길이 놓여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뭇거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도는 존재하지 않는 듯싶었다. 조심스레 한 걸음씩 길 위로 발을 내디뎠다. 보이지도 않는 끝을 보고자 계속해서 걸어 나가도, 도무지 그 끝의 행방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지친 몸을 이끌고서 걷다가 무의식적으로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머릿속에서는 이것이 마치 그림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걷던 발의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서는 걸어온 흔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에서는 복잡하게 엉킨 생각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통제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몸뚱이로 중간에 멈추어 서면, 그때 저 끝에서 엷은 어둠이 보였다. 마치 무엇에 홀리듯 멈추었던 발걸음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능에 따라 몇 번 걸으면, 조그맣던 한구석부터 시작하여 어둠으로부터 감싸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새도 모르게 어떤 하얌이라는 단어가 애당초 존재했었나 싶기도, 순간적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는 그을린 책상이었다. 틈마다 하얀 자태를 조금씩 뽐내어 시선을 잡아 끌어내 주고 있다. 그렇게 다가가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형체가 반듯하게 위에 놓여있다. 꽤 불쾌하고 불편한 기분이 든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 기분을 없애고 싶었다.

스토리텔러 : 정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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