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편지
< 하이퍼서사 작품 >
< 하이퍼서사 작품 >
11월의 편지 _ 추억
[ 현재 ]
꽤 오랜 시간 동안 예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비는 그쳐있었다. 바닥은 젖어있었지만, 하늘이라도 멀쩡하니 다행이지 않을까. 동시에 주변의 안개도 사라져 온전하게 그 모습을 모두 드러내 보였다. 깊은 생각 속에 얻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잊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 이끄는 곳.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의 공간이지만. 관리가 안 되어 있어 많이 낡아 보였다. 움푹 패어 있었고, 어느 가지는 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만의 크기를 자랑하듯 높고 단단하게 우뚝 솟아있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축축하니 앉을 수는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시간이 흐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바퀴를 돌아 뒤를 향하면, 역시나 같이 존재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분 부분이 녹슬어있었다. 관리하는 이가 그 누구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손을 올려 위를 스치면 푸른색의 물이 함께 묻어 나온다. 먼지가 빗물로 씻겨 나갔으리라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뚜껑을 열면 당연하게도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났으니까 말이다. 울면서 편지를 넣었던 때를 기억하면, 손이 저만치도 거의 닿을까 말까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돼버렸다. 빈 곳을 바라보면, 편지가 잘 도착한 듯싶었다. 회사에서부터 지속해오던 숨 막힘이. 아니 더 올라가 몇 년 전부터 답답했던 가슴 한 부분이 이제야 풀리는 것만 같았다. 답장은 애당초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할머니를 만난다면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스토리텔러 : 정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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