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하이퍼서사 작품 >

11월의 편지 _ 남은 재

[ 현재 ]

꽤 오랜 시간 동안 예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비는 그쳐있었다. 바닥은 젖어있었지만, 하늘이라도 멀쩡하니 다행이지 않을까. 동시에 주변의 안개도 사라져 온전하게 그 모습을 모두 드러내 보였다. 깊은 생각 속에 얻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잊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 이끄는 곳.

시골집.png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의 공간이지만. 할머니가 떠난 뒤, 우연히 바로 서울 생활을 하게 됐었다. 그 이후로, 돌아온 적이 없었으니.... 이렇게 본 적은 처음이었다. 철거를 하다 말았는지, 아니면 아예 손을 대다 포기한 건지, 그저 의문 모를 공간으로만 남아있었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본래 폐가였다고 해도 믿을 듯싶었다. 들어가려는 입구의 바닥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나무판자가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다. 기억상으로는 예전에 문이 떨어졌던 거 같은데, 이후로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나 보다. 비 때문에 고린내가 진동하는 걸 억지로 참고서는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나 문이 열리지 않을까 하여 문을 열려 하면, 안에서 무언가에 낀 듯, 열리지도 않았다. 아예 들어가지지도 않았다.

결국 한참을 주변에서 서성이다 다다른 곳은 널브러진 판자 주변이었다. 이때까지 무엇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생각해보면 온통 회사 일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깊게 파고들수록, 답답함이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생각을 하고 있으면, 판자 밑에 깔린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비에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언뜻 그 모양새를 볼 수 있었다. 더 심해진 것 같은 냄새를 참아 조심스레 피면, 마주한 건 그림이었다. 못난 그림. 몇 살 때 그렸는지, 형편없다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익숙했다. 보자마자 떠오른 기억이 생생했으니 말이다. 밤하늘 밑에서 선물을 받고, 아마 받자마자 이 그림도 그렸을 것이다. 나머지들은 어디 갔는지, 시간이 너무 지나 그 행방들은 알 수가 없었다. 집 안에조차 들어가지 못하니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미 썩어버린 걸 수도 있다.  

종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예전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만으로 머릿속은 가득했다. 이미 지난 버린 시간을, 누구도 탓할 수 없었지만.... 정말 그저 돌아가고 싶었다. 답답했던 가슴 한 부분이 더 답답해지고 있었다. 답답함을 넘어 아리기까지 했다. 애당초 못 본다는 걸 알고 있다. 만나는 걸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냥, 만날 수만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뿐이다. 

"보고 싶어요, 많이"

%EC%98%A4%EB%9E%98%EB%90%9C%20%EC%A2%85%

스토리텔러 : 정은승

88x31.png

© 2023 by Name of Site.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